법학과 수학의 닮은 점
법학과 수학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순서대로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중간 생략이나 비약이 있으면 안 된다.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 구성요건 해당성
- 위법성
- 책임성
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는지는 반드시 순서대로 따진다.
즉 구성요건에 해당되는지를 따진 후
위법성을 따지고
위법성을 따진 후에 책임성을 따진다.
순서를 바꾸면 안 된다.
제250조 (살인, 존속살해)
①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사람을 살해'하면 '살인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자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떨까?
교도관이 사형을 집행했다.
즉 교도관이 사형수를 죽였다.
교도관이
사형수라는 '사람'을
사형집행이라는 방식으로 '살해'했다.
'사람을 살해'했으니 '살인죄'인가?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목졸라 죽이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긴다고 해서
살아야겠기에 할 수 없이 '사람'을 '살해'했다.
'사람을 살해'했으니 '살인죄'인가?
이런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성의 순서대로 살펴보자.
살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살해' 해야 한다.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 살인죄의 구성요건이고,
어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면 그의 행위는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살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살해해야 하므로
'사람'이 아닌 '개'를 살해하면 '살인죄'가 아니다.
'개'를 살해한 경우에 다른 법령으로 처벌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형법 제250조가 정하고 있는 '살인죄'는 아니다.
'살해'해야 하기 때문에
흠씬 두들겨 패기는 했지만 죽음에 이르지 않았으면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렀더라도
아직 생명이 남아있으면 '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죄'는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해죄'에 해당한다.
당연히 형량도 다르다.
형법 제258조(중상해, 존속중상해)
①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신체의 상해로 인하여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하여 전 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한참 두들겨 패다 보니 죽었다면 여전히 '살인죄'가 아니다.
폭행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상해치사죄'가 된다.
역시 형량이 다르다.
형법 제259조(상해치사)
①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하여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죽일 목적으로 두들겨 팬 것이라면 '살인죄'가 성립한다.
'살해'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살해'의 '방법'으로 '두둘겨 팬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계로 '살인죄'의 구성요건 즉 '사람'을 '살해'한 사람은 모두 ‘살인죄로 처벌’해야 할까?
이제 두 번째 단계로 '위법성'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
위법성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이미 저질러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법률상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살해했으면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지,
뭘 또 생각해야 하는 거냐고 말하면 안 된다.
앞에서 얘기했던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을 생각해보자.
교도관이 사형을 집행했다.
그는 사형수라는 '사람'을 사형집행이라는 방법으로 '살해'했다.
그럼 '살인죄'인가?
군인이 전투 중에 적군을 쏴 죽였다.
그는 전투 중에 적군이라는 '사람'을 총으로 '살해'했다.
'살인죄'인가?
'사람'을 '살해'하는 방법으로 사형을 집행한 교도관의 행위는
법률상 허용되는 정당한 공무집행이다.
군인이 전투 중 적군을 살해하는 것도 법률상 허용되는 행위이다.
교도관과 군인은 '사람'을 '살해'하였지만
이는 법률상 허용되는 행위이므로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
'사람을 살해했으면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지 뭘 또 생각해야 하는 거냐'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사형을 집행한 교도관과 적군을 쏴 죽인 군인의 경우는
살인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위법성'이 없어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
위법성이 없는 다른 경우를 하나 더 들어보자.
남의 재산을 망가뜨리면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
길을 가는데 자동차가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서는 내게로 달려온다.
다급해진 나는 길가의 가게로 황급히 몸을 피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 가게 앞에 있던 상품들을 망가뜨렸다.
이 경우 내게 재물손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위법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형사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고
재물손괴에 따른 민사상 배상책임은 져야 한다.
이 민사상 책임도 자동차 운전자, 자동차 소유자와 재판을 해서 범위가 정해지겠지만.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성'이 있으면 살인죄로 처벌받는 것일까?
세 번째로 '책임성'을 따져봐야 한다.
즉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를 했더라도
그 행위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없으면 범죄가 되지 않는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의해 강요된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는 앞에 있는 사람을 목졸라 죽일 것을 강요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책임성'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살해'했더라도 살인죄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
여기서 잠깐 숨 좀 돌리고 가자.
'아니 뭐가 이렇게 복잡해?' 하는 생각이 드시나?
법이라는 게 그렇다.
법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머리 속도 단순하지 않다.
그러려니 해야 한다.
다시 수학 이야기.
범죄가 성립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순서를 바꾸면 안 되고 차례차례 순서대로 생각해야 한다.
학생 시절에 배운 수학이 그랬던 것 같다.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면서도 수많은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학창 시절에 배운 수학이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수학과 법학은 매우 가깝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