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노래가 되다

2.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적성(雨滴聲) 2023. 4. 5. 16:56

 

 

이수익의 시 <우울한 샹송>,

길은정의 노래 <우울한 샹송>.

 

길은정의 노래 : https://www.youtube.com/watch?v=Ux-377OvP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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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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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이라는 단어에서 그 어떤 느낌이 오는 사람이 지금 얼마나 될까?

이제 우체국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사람은 없다.

손으로 편지를 쓰지 않을뿐더러 우체국에 가지를 않는다.

도대체 지금 누가 편지에 그리움을 가득 담는다는 말인가?

그리움을 편지에 담아 전달할 만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있기는 한 건가?

 

'샹송'이라는 음악은 또 어떤가?

나이 50대라면 혹 들어봤을까

40대 아래라면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 

이 시는 1960년대의 시이다.

시인은 1942년생.

 

배경이 우체국이어서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다지 실감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잃어버린 사랑이야 예나 지금이나 있는 것이니까

감정을 살린다면 이 시가 갖는 맛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 그리고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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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의 일부가 변형되었다.

하지만 시를 크게 다치는 정도는 아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더해지고 뺀 것이 무엇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노래는 썩 잘 만들어졌다.

70년대에 젊음을 지내왔고 길은정이라는 사람을 아는

내 귀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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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쓴 이수익 시인의 시 중에

엄청나게 좋아하는 시가 있다.

 

 

          결빙(結氷)의 아버지

 

                                      이수익(李秀翼)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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