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노래가 되다

11. 한계령 1 - 정덕수

우적성(雨滴聲) 2023. 4. 8. 19:56

 

 

정덕수의 시 <한계령 1>,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양희은의 노래

 

https://youtu.be/RLevdLXYWwo?si=15qX43A_8-IFrO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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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시를 알기 전에 노래를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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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령

 

                               노래 양희은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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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이 육십 즈음의 어느 일요일 저녁,

남성중창단의 공연에서 남성중창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처럼 살다 가고파'라는 말은

바라는 바대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과거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을 아우르는 뼈아픈 그런 말...

 

나이 육십 즈음,
아직도
내 생각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삶,
그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려나?
들에 핀 야생화에게 그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게 아니겠냐는
그런 말이 조금쯤은 위로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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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에는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라는 표현 외에도

중장년의 가슴을 촉촉하게 만드는 표현들이 있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잊으라 잊어버리라

눈물

지친 내 어깨

 

어느 삶인들 만만하랴마는

이런 구절들 때문에 이 노래가 불려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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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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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령에서 1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 육천 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 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

 

 

《한계령에서》(북피디닷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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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나이 스물도 되기 전에 쓴 이 시에 얽힌 얘기를 들어보면

노래와 시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있더라도

노래는 노래대로

시는 시대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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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을 작사한 사람이

하덕규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그가 가사를 창작한 것이 아니라

정덕수의 시를 기반으로 가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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