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계령 1 - 정덕수
정덕수의 시 <한계령 1>,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양희은의 노래
https://youtu.be/RLevdLXYWwo?si=15qX43A_8-IFrO68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시를 알기 전에 노래를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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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노래 양희은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몇 년 전
나이 육십 즈음의 어느 일요일 저녁,
남성중창단의 공연에서 남성중창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처럼 살다 가고파'라는 말은
바라는 바대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과거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을 아우르는 뼈아픈 그런 말...
나이 육십 즈음,
아직도
내 생각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삶,
그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려나?
들에 핀 야생화에게 그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게 아니겠냐는
그런 말이 조금쯤은 위로가 되려나?...
이 노래에는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라는 표현 외에도
중장년의 가슴을 촉촉하게 만드는 표현들이 있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잊으라 잊어버리라
눈물
지친 내 어깨
어느 삶인들 만만하랴마는
이런 구절들 때문에 이 노래가 불려지는 것이리라.
다음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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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에서 1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 육천 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 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1981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고향 오색을 보며
《한계령에서》(북피디닷컴, 2002)
시인이 나이 스물도 되기 전에 쓴 이 시에 얽힌 얘기를 들어보면
노래와 시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있더라도
노래는 노래대로
시는 시대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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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을 작사한 사람이
하덕규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그가 가사를 창작한 것이 아니라
정덕수의 시를 기반으로 가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