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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술 한잔 - 정호승시(詩), 노래가 되다 2023. 4. 5. 18:29
정호승의 시 <술 한잔>,
안치환의 노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안치환의 노래 : https://www.youtube.com/watch?v=MWPJ5UJmgu8
---------------술 한잔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은 '맹랑하다'는 것이었다.
맹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 맞아... 그랬어...'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던 내 인생에게
서운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비로소
시인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던 시인의 인생을 생각했고
그러면서 내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던 내 인생을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서 내 인생에게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맹랑하게도 말이다.
---------------이 시를 쓰게 된 경위에 대해 시인 자신이 한 얘기가 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문득 나와 내 인생을 객관화해 각자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사랑하던 남녀가
다정히 손을 잡고 가다가 잠시 손을 놓고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나’
하는 의구심을 지니고 서로를 응시하듯이.
그때 감전이라도 된 듯 화들짝 놀라 뒷걸음쳤다.나는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으나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어떠한 어려움도 무릅쓰고 모든 것을 다 해주었으나
내 인생은 나를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삭풍처럼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날 밤,힘없이 인생의 손을 놓은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생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가난과 이별과 거듭되는 실패의 고통 속으로
그토록 토끼몰이하듯 몰아넣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고통의 도가니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생각되자
인생에 대해 강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 밤 ‘술 한잔’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후략)
동아일보 2012년 7월 12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20712/47704691/1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노래 안치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그런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노래는 제목을
'술 한잔'에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로 바꾸고
몇 군데 고친 후
노래의 마지막에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는 한 줄을 추가했다.
시에서의 세 글자 제목이
노래에서는 열 다섯 글자 제목으로 바꾸었는데,
이렇게 긴 제목을 가진 노래도 흔하지 않다.
시도 맹랑한데 노래 역시 맹랑하다.
그러니 노래 제목이 열 다섯 글자가 된 것도 맹랑함을 더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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